1월 17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날짜를 보니  또 한참 안썼구나..
 
오늘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어제라고 하는게 낯겠다. 어제는 그런대로 만족할만큼 지냈다. 잠을 좀 줄이면 더 좋겠지만 ㅋㅋ
 
아하~~~ 뉴스를 보는 것도 아니고 신문을 봐도 특별한게 없었는데…..
음 오늘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종교에 대해 조금 쓸까?
왜냐하면 내가 그저께 읽은 책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거였느데, 내용이 다 하느님에 관련된 내용 이었다.
내용중에 당신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도 없어? 하고 남편이 아내한테 이야기 하니까 갑자기 인정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원래 하느님을 믿어서 벌을 받지 않으려면 착해야 한다고 생각 했던 것일까?
착하게.. 이건 과연 무엇일까? 벌거 벗어 추위에 떨고 있는 사내를 집으로 들어와 당장 내일 먹을 빵 밖에 남아 있지 않은 빵은 그 젊은 이에게 주게 만드는 그런 것이 하나님일까?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 이건 가족이외에 사람에게는 힘든 것이다. 아니 난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희생 이외에는 오히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죽으므로 인해 그사람이 살아다 한들 그사람의 후손은 나를 잊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살아 있으므로써 나의 흔적을 남길수 있다. 자손이라는 이름하에,
또 내를 만들어주신 부모님의 흔적을 그들이 살았다는 흔적을 없애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다. 지금은 나가 있다는 것은
그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붉디 붉은 피 안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의 피가 섞여 있다.
인간은 인간이 말하는 가장 멍청한 생물도 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자손번식…
난 이것에 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데카르트 처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닌,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내 부모님은 존재 했었다, 또는 존재한다에 의미를 부여 한다.
그런데 마지막 남을 식량을 오늘의 남을 살리기 위하여 준다. 참 비웃음이 나왔다.
 
 
 
또 다른 이야기 에서는 (단편집이였다.)
일생에 한번 예수가 죽었던 곳, 예수가 살았던 성지를 가 보는것이 최고의 축복을 얻는 다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돈을 들여서 기도하고, 돈을 내고 돌아오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웃음이 나왔다. 일생을 벌어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성지를 갔다 온다.
나쁘지 않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존경하기 때문에 한발짝 다가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돈을 내는 곳이 정해져 있었다. 라는 부분에서 역시 성지 순례도 그 지역 사람들이 퍼트린
소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그곳은 많은 신도들이 방문하고 있을 것이다. 기도 하며 돈을 내고, 천국행 표는 돈이 없으면 안되는 것이가?
교회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같이 기도하고 믿고,, 그러면 되는데 돈은 왜 받는 것인가?
종교는 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이 믿는다. 그런 사람이 교회에 나가 의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기도를 하고 돈을 낸다. 음식을 덜먹고 기도를 한번 더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살면서 뭐가 좋은데??
어떤 책에서 본 구절중 “죽어서 잘살기 위해 왜 현생에 인생을 바치는 건데?” 라는 부분이 있었다.
정말 맞는 말이지 않는가?  죽어서 좋은 곳을 가기 위해 기도를 하고 염불을 외운다.
그럼 왜 태어 난 건데??? 죽기위해 태어났다는 말이 된다. 너무 웃기지 않은가?
 
 
아 오늘 길어져 버렸다. 다음에는 더 자세히 정확히 알아서 논해야지 ㅋㅋ
언젠가는  성경도 볼 예정이다. 그러나 나의 성경의 주변에는 비판의 말이 가득할 것이다. ㅋㅋ
곪아 썩어가는 것들을 두 눈에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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