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장 지글러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바로 유니세프에 기부를 했다.
10000원 밖에 안되지만 이런 책을 읽고 가만히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였다. 누군가가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픈 건 사실 한 순간이었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있을 것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고 나와는 딴 세상 이야기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의 변화가 없어도 누군가는 그들을 도우려고 노력한다는 어리석은 믿음 때문일 것이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깡마른 뼈 부딪침 보다는, 출렁거리는 살의 경고 소리가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눈앞에서 굶주림으로 죽는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할 것이다.
또한 5초마다 한 명씩 죽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면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지만 눈앞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는 가슴의 눈의 감아 버리고 무시를 하고 있다.
이 책은 음식을 버리는 한쪽과 음식을 못 먹어 허덕이는 한쪽이 왜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다.
나도 기아를 여러 가지 매체에서 볼 때 마다 가졌던 생각이다.
남는 음식이 있으면 부족한 사람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수많은 곡물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는 현상 또한 그렇다.
원인은 음식은 부자 나라에 집중된다는 데에 있다. 결코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
많은 부자 국가들은 자국의 농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곡물을 그냥 없애 버리거나 한정된 양만을 생산하게 한다.
갓 태어난 신생아들에게 주는 모유조차 영양이 별로 없어 ‘이름 없는 무덤’이 만들어지는 것을 그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불룩 튀어나온 배를 탱탱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한 쪽에서는 배를 ‘더’ 불릴 방법을 선별하고 있으며 한 쪽에서는 누구를 살릴 수 있을지 눈물을 흘리며 선별하고 있다.
기아 문제는 더욱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더 많은 육식과,
더 잔혹해져가는 전쟁들,
그리고 기아문제를 교육하지 않는 학교,
부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시장가격,
식민 정치의 상흔,
부패한 우두머리 등이 나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음식들이 기아의 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기의 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더 많은 고기를 만들기 위해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없애기도 한다. 그게 더 돈을 벌수 있기 때문이다.
소는 배를 채우고 사람은 굶는다? 라는 소재목은 아무 생각 없이 육식을 즐기는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전쟁은 농토를 황폐화 시키고 국제 구호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 전쟁의 목적이 나아지기 위한 것이면 그래도 좀 낳겠지만 더 안 좋아 지기 위한 전쟁이라는데 문제는 커진다.

기아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시장의 엄청나게 중시한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은 시장에 모든 걸 맡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에게는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싫지만 자신들이 통제하는 것은 통제가 아닌 가 보다.
그들은 앉아서 곡물가격을 정한다. 그들은 생산적인 일을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곡물이 이동하는 경로속에서만 가격을 가지고 손장난 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계속 존재하는 이상 어떻게 가난한 나라들이 비싸진 곡물을 살 수 있을까?

학교는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고 있다.
우리는 수학공식 하나를 더 배우는 대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연말 언제나 하는 모금은 학생들의 입에서 원성이 나오세 한다.
그 돈이 없어 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어른이 돼서도 잘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 배워야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루 종일 농사만 짓는 사람들은 굶고 있다.
땡볕에서 검은 피부를 가지고 땀을 흘리는 사람들, 그들이 굶어 죽고 있다.
노예제도가 없어지고 옛날처럼 지주가 있어 뺏어가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은 더 효율적으로 사람들은 그들의 것을 뺏어간다.
식민지하에 있던 나라들은 곡물을 생산하지 않는다.
카카오, 커피, 사탕수수 등을 생산한다. 식민지 때 밭을 그런 것들을 생산하게끔 바꿔 버렸기 때문이다.
식민지 아닌 식민지살이를 여전히 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땀 흘리고 일하지만 엄청나게 싼 값에 팔아지고 있다.
그들에게 남는 돈으로는 곡식을 살수 없을만큼.

많은 구호가 필요한데도 많은 구호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돈이 국제 기구에는 부족해서 선별이 일어나고 길게 늘어선 줄은 줄어들 줄 모른다.
이 선별이라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프다.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부족한 구호 물품으로 국제 기구는 모여든 사람들 중에서 살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영양을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먼 길을 걸어왔지만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도움을 주러 왔지만 죽어야 될 사람을 선발하는 사람들을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지만 어찌 됐든 자국에서 농산물을 생산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가격에 구애 받지도 않고 다른 나라 도움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따지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런데 마지막 상카라의 이야기는 세상이 정말로 힘든 세상임을 알려준다.
정말 기아가 많던 부르키나파소라는 나라는 상카라라는 한 개혁자에 의해 자급자족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많은 부를 독점하던 공무원에 말에 따르면 정말 먼 친척까지 세금을 내기 위해 자신에게 도움을 구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카라가 개혁한 후에는 자신의 월급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훨씬 잘 살게 됐다고 말한다.
그의 친척들은 불합리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고, 땅또 생겼기 때문이다.
상카라는 사람들에게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주었다.
그의 개혁은 성공적이었고 많은 기아가 사라 졌다. 주변 국가들에게 모범이 된 그는 똑똑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계속적으로 배부르게 살아오고 있는 이들 말이다. 그들은 확실하게 똑똑했다.
그의 개혁은 그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함을 판단했고 어느날 암살당했다.
그리고 부르키나파소는 다시 많은 기아를 보유하게 되었다. 또 여전히 똑똑한 이들은 배를 채우고 있다.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개혁은 그렇게 매장되어 졌다.

무슨 문제를 해결하기 워해서는 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해결책을 찾아야만 하고 그걸 할 만한 힘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해결책이 매장 되었다.
그러나 아마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세계가 그들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정말 옭고 필요한 일이라 전세계자 판단하여 도움을 주었다면,
암살당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고 암살되어도 성공적이던 개혁은 계속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은 기아 이야기가 나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길 원한다.
사람들이 눈앞의 죽음만을 인식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고통도 같이 느끼길 바란다.
나는 책이란 걸 읽고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지식을 얻기 위한 글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걸로 ‘말’이 전과 달라져야 하며
행동에서 지식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더 많은 행동과 공감을 원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충분한 가치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변하는 것이 이 사람은 해결책이라 딱 명시하고 있진 않지만

사람들이 기아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눈 뜬 장님이고,

가슴을 응어리를 담게 되는 것이고, 가슴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한 번의 눈길은 행동을 만들어 내고 행동은 사람을 살릴 것이다.

곪아 썩어가는 것들을 두 눈에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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