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 – 황정은

 책, 책, 책……. 잠시 동안 이 소설에서 묘사된 독서간 갈등 장면을 어디에서 봤는지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곧 내 삶 어디에서도 이런 상황을 직접 본 경험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왜 내가 이것을 익숙한 상황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문득, 그것이 모든 한국인에게 느껴지는 익숙함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이 갈등을 가족 관계로만 보자면 동서들이란, 가족 안의 여자들이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결혼이라는 방식을 통해 ‘남자 쪽’ 가족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한 순간에 자기를 잘 알던 공동체를 떠나, 새로운 공동체에 속해져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고, 고난 일 수밖에 없다. 또한 며느리는 가족 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해를 받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이해하며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한다. 다른 며느리가 있는 경우엔, 남편과의 사랑을 통해 만난 공동체와는 다른 동서간의 만남이 생긴다. 그들은 조금 벅찬 관계로써 한 공동체 내에 존재해야만 하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받아 들여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개념이 너무나 줄어들어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 또한 많이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한 식구가 되었기 때문에 남자에 의해 여자는 서열이 정해진다. 그러한 서열은 그들에게 의무감만을 주고, 하나의 억압으로 작용하게 되어 결국 갈등을 심화 시킨다. 형식적 가족 만들기는 서로 가식적이 되게 하고,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 불만이 있어도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그렇게 쌓아놓아, 주인공들은 결국은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자식들도 그 싸우는 풍경 한쪽에 놓고 있는데, 그들이 얼마나 부모들의 관계에 무관심 한지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저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살짝 옆으로 빗겨있어 시계의 초침이나 보면서, 딴 짓과 딴 생각을 하는 모습은 부모들의 갈등이 얼마나 무의미 한 것인지  보여준다. 

 대화속의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을 보자면, 내용 중 한씨네의 ‘잘 못살았었던 얘기’와 소설 시작 부분에서의 박씨네 집 주변의 재개발 모습 묘사는 갈등이 결코 단순한 관계적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고씨는 계속적으로 박씨에게 신세한탄을 했고 그것에 지친 박씨가 전화를 끊는 상황에서 표면적 갈등이 시작되었다. 고씨의 입에서 나온 ‘형편이 좀 피고, 이제 사는 것 같으니까, 저보다 못난 윗사람이 안 보이는 거겠지’라는 말에서 예전처럼 도와주지 않음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담겨 있다. 한쪽에 돈이 생기자 돈 없는 쪽은 관계를 이용하여 보려 하고, 돈 있는 쪽은 그러한 관계를 끊으려 한다. 이전까지 그 관계는 형식적이긴 했어도 가족적 이였지만 이제는 그것이 물질적인 관계로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정이통한 적 없기에 상황은 더욱 금세 악화된다. 고씨는 손윗동서의 권위라도 지키려고 해 보았지만 그것마저도 없어지는 상황이 펼쳐진다.

 가족이 붕괴되는 상황까지 나아가게 만드는 형식적 관계 속에 속박과, 물질적으로 가진 것의 차이로 인해 생겨나는 계급은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유산문제로 싸우는 형제들이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서로 만나지도 않는 형제들의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느끼며 살아가기에, 이 글이 독자들에게 ‘익숙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지내는 친척이라는 이름의 가족들이 줄어들면서, 정을 나눌 사람도 줄고 있는데, 어째서 그 얼마 안 되는 사람사이의 정 또한 메말라 가는 것일까? 복잡하다는, 또는 귀찮다는 등의 말들로 자기 자신을 위해 정의 흐름을 끊고 있는데, 스스로에게 정을 주는 사람 또한 남겨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듯하다. 가족이란 가정(家情)이다. 현대 사회에서 돈에 따른 계급을 없앨 수는 없고,  전통적인 서열등도 아주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의 갈등을 없애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마음이 통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정을 주고받는 일이 어렵게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갈등이 난무하게 되면 얼마나 더  괴로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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