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 지고 있다.


교과서라는 것과 현실사회 사이에서 부조리를 한두번 느껴 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내 기분이 답답하다라는 말로밖에 표현될 수 없기에
촛농이 머리위로 떨어져 온몸을 묵고 있는 상황의 감정 같은 것이 온몸을 파고 든다.

난 조금전 까지만해도, 열심히 내신공부를 하고 있었다.
(뭐 많이 자고, 많이 먹고 하면서 시간을 때우기는 했지만..)
진실로 노력하지 않은 자의 변명이나 한번 해 보려 한다.

문학책을 보다가 정말 우연히 ‘우리는 지금 반란을 꿈꾼다’라는 대본을 보았다.
아빠 말처럼 내가 이상한 것일까?
이것을 읽고 모든 것을 하기 싫어지는 나는.

본문뒤 꼼꼼히 읽기 내용

s#8에서 수학, 사회, 영어 수업 시간에 다인과 담당 교사 간에 주고받은 대화가 서로 어긋나고있다.

다음 표를 보고 s#8을 통해 작가가 부각 시키려는 교육 현실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다인  담당교사의 반응
 수학시간  에스켈레이터를 만드는 데 기둥은 몇 미터냐의 문제다.  뭐?
 사회시간   상권이라는 것은 사람이랑 물자가 움직이는 걸 따라 생겨난다.   상권그림이나 그려 봐라.
 영어시간   beautiful이나 cute나 마찬가지다.   뒤로 나가 서.

그리고 본문 내용중 교칙위반을 한 다인이가 선생님한테 혼나는 장면.

읽어보는게 더 잘 알 수 있겠지만 위에 두개가 이 대본에서 말하려는 다가 아닐까?

다인이라는 애는 대안학교 라는 곳에서 일반학교로 전학온 애다.
대안학교라는 것을 들어는 봤지만 뭔지 몰랐다. 그러다 교과서 옆 날개를 보고 알았다.

대안학교: 공교육 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종래의 교육과정을 탈피한 학교.

다인이는 자유로운 학교에서 전학을 왔다. 그리고 적응하지 못한다.
나는, 그리고 많은 이들은 처음부터 이곳에 있어 왔기 때문에 알면서도 무시해 왔던것이
그녀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사실로 다가온다는 것이 무섭다.

여러가지 수업시간의 다인이의 말은 ‘뭐지?’와 함께 ‘와!’를 만들어 낸다.
맞다. 그녀가.

그리고 다인이가 교칙위반을 한 것은 운동화신은 죄.
교칙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그것을 잡아내자
다인이는 이해시켜 달라고 한다. 그러면 벌을 받겠다고. ‘와…’ (슬퍼진다. 난 아직 학생이기에..)

교과서라는 것은 교육의 기본이다.
아이들 교육의 기본이다.
청소년 교육의 기본이다.
미성숙한 어른이 갖춰야 할 것이다.
다음 사회주류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현실을 비판하는 작품이 아닌가.
현실이 잘못됬음을 알고 이 작품이 뛰어나기에 청소년들에게 가르칠만하다고 판단되어 실린것이 아닌가.
사회는 왜 교과서가 비판하는 것 조차 바뀌지 않는 것인가.

이전에 ‘원고지’를 공부했을때, 그전에 수업을 들었을때, 너무나 답답했다.
왜 공부하는 거지? 정말 현실을 풍자하는 것이 작품성이 뛰어난 건가?
근데 왜 똑똑한 사람들은 현실이 옳다 그러지?
그것들은 작품성만 뛰어날 뿐인가?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게 뭐지?

교장선생님은 우리들이 급식실에 담요를 가지고 오는 경우 압수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빼았았다. 무엇때문에? 뭐가 잘못된 거지?
춥다는데.

우리학교는 원래 쥐색 코트밖에 허용되지 않았었다.
무겁고 따뜻하지도 않은. (안입는 거보다야 따뜻하겠지만)
다른 모든 점퍼는 모두 빼았았다.
지금은 ‘신종 플루’때문에 검은색 점퍼까지는 허용하고 있다. (단, 로고가 크게 세겨진것은 안된다.)
그리고 안에는 모든 교복을 반듯하게 갖춰 입어야 한다.
교문에서 열어 보라고 하고 확인한다. (뭐지?…)
단, 교내에서는 점퍼을 벗어야 한다.(응? 모든 교내가 따뜻한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검은색 점퍼가 허용되지 않았을때,
생활지도부를 담당하는 미술선생님과 언쟁을 조금 벌였다.
왜? 어째서? 라는 물음에 제대로 대답해주신 기억은 없다.
‘우리는 반란을..’에서 처럼 완전 무시는 아니였지만, 대답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급식시간 난 많이 춥지는 않아서 블라우스에 조끼까지만 입었다.
‘왜 가디건 안입냐? 춥다는 녀석이.’ 옆을 지나가는 미술선생님의 한마디.

-사실 난 그런데로 학교 교칙을 잘 지키는 편에 속한다. 별로 선생님들의 눈을 속이려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만이 없는 것이 아니며,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 가식적인 모습안에 나를 가두고 좋은 모습을 선생님들께 보여 드리려고 하는 것 뿐.
(이 고질병.. 용기가 없어 날라리가 될수 없다.- 난 이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이다.
날라리를 내가 미화 시키려는 것인가? 범생이라고 부르는 애들을 다 겁쟁이로 만들려는 것인가?
마찰없게 살아가기, 자기스승에게 잘하기, 등등이 용기기 없어 가능한 것들?
나의 기준에서 성실한 애들을 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결론이 안났다.)-

난 내가 담요를 급식실에서 뺏겨봐야 담요를 왜뺏냐는 불만을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인가?
내가 굶어 죽어봐야 굶어 죽는 애들에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인가?

………… 너무 길어져.. 다음거에 연결…………

곪아 썩어가는 것들을 두 눈에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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