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화 과정


난 게으르다. 씻기도 참 싫어한다. 그래서 가끔 과거에 태어났었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단오날이라고 해서 머리를 감는 날이 따로 있었다고 처음 들었을떄 내가 생각 했던 건 ‘일년에 한번 만 머리를 감아도 된다니!’였다. 물론 그정도 까지는 아니였겠지만, 분명 지금의 습관처럼 씻는 것보다는 덜 씻었을 것이라고 생각 된다. 서양에서도 머리가 가려울때 긁는 도구가 따로 있어서 사람들 앞에서 긁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정말 부러웠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왜 지금과 다를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발전했으니까’ 또는 ‘그냥 시간이 지났으니까’ 라는 말로 쉽게 넘어갔던것 같다. 그런데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질문을 던졌다. ‘왜 변화하는 걸까?’ 그리고 그것을 문명화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다.

‘문명화는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엘리아스는 두 권에 걸쳐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주체는 인간 개개인 이지만, 그는 개개인을 연구하기 보다는 시회 그자체를 연구하는 방법을 택했다. 개인은 관계속에 속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런 결합태 속에서 진짜 인간의 모습을 볼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문명이라는 개념을 발생부터 따라가 보았다.

우선 프랑스와 독일에서 생긴 문명화라는 개념을 비교하므로써 그 본질을 찾으려 했다. 두 사회는, 프랑스가 비교적 계층간의 소통이 쉽고, 교류가 많았던 반면에 독일은 계층사이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사회라는 등의 차이가 있지만 문명화라는 것의 생긴 공통적인 이유를 봤을 때 결국 그것은 상류층들이 자신들의 특성을 성격지으려 하면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월성에 대한 인식이, 낮은 계급과의 차이를 만들어내고자 했고, 스스로 금기를 부과했다. 이 과정에서 흔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위생의 이유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불쾌감의 정서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서적 고통에는 특별하고 정확한 원인은 없었던 걸로 보인다. ‘문명화 되다’라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이라는 뜻을 집어 넣고 사용했기에 이러한 주장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저 우연적 변화가 신기했다. 우연적 변화라 생각하는 까닭은 그런 금기가 임의적이라는 데 있다. 만약 손가락을 항상 코에 넣는 것이 그들을 규정짓는 특성으로서 자리 잡았다면 지금의 우리의 예절의 모습또한 바뀌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급의 차이에서 오는 더 우월하다는 데서 오는 자긍심이 정서적 고통을 만들어내고 사회의 압박을 형성하며 자기강제로 이어이는 과정이 진행된다. 도덕적 이유나 위생적이유나 사실 이미 형성된 자기강제, 무의식적 행동에 나중에 붙여진 설명일 뿐인 것이다.

여기의 자기 강제는 문명화 과정의 연결고리이다. 자기강제는 앞에서 이야기한것 외에 여러 이유에서 생기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종속관계나 의존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나의 행동이 다른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사회가 강요를 만들어내고 자기강제를 만들어내 문명화의 동력이된다. 하나의 예가 성적 사유화에 대한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관계속에서 점점 성적인 이야기가 은밀화 되고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스스로 강제하는점이 그렇다고 생각되는데 좀 잘못 이해 한것 같기도 하다.) 이부분이 흥미로웠다. 조금 옆길로 샌다면, 이부분의 설명은 성적인 이야기가 뒤쪽으로 가고 말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가 형성되면서 ‘그들 내면의 사회 발생적 막는다.’는 것이다. 성적 부분 뿐만 아니라 역사가 진행되면서 만들어진 어른의 자기 강제가 어린이 들에게 학습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욱더 걸리게 된다. 또 다른 이유가 뒤쪽에서 나오는데, 억제나 은밀화 요구가 커질 수록 사회에서는 오히려 그 교육이 점점 가정으로, 폐쇠적으로 집중된다.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울 기회가 많았지만 그러한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결국 어른들과 아이의 격차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 ‘왜 시간이 갈수록, 역사가 진행될수록 성숙의 시기가 늙어질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결혼을 지금보다 일찍했다. 단순히 식을 일찍 올리는 수준이 아닌 정신 수준이 그정도가 됬다는 것을 여러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결국 사회적 강제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어른이 되기 위한, 성숙하기 위한 시간은 더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은 것 같아서 좋았다.
통제 또한 문명화의 중요한 고리 중 하나인데,그것은 ‘우리에게 자유란 분명 늘어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들게 만들었다. 엘리아스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문명화의 방향은 언제나 억압되고, 자기 통제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변화된 뿐이라는 것이다. 여성이 해방된다는 자유가 늘어나면 남성의 제한또한 늘어나고 상호 관계속에서 보다 강력한 자기 통제가 요구된다. 신분해방역시 좀더 적은 통제로 간 계층이 있다면 더 큰 통제가 부과되는 계층도 있는 것이다. 자유가 통제를 늘어나게 한다. 모순적이다. 그런데 문득 지금의 우리 법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했다.(사실 법이 맞는지는 모르겠다.)’우리의 자유는 남에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하다.’ 자유로울 수록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남’을 만나게 되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한 구절들을 평소에 너무 간단하게 인식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가끔 우리 사회에서 통제가 줄어들었음이 보일때가 있다. 옛날에 부끄러워 했었던 것을 모든사람 앞에서 스스럼 없이 드러내는 경우가 생길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아스는 이런것 역시 문명화 과정이라고 말한다. 우선 전체적인 과정의 방향은 변하지 않았고,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퇴보 또한 큰 흐름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더 많은 통제가 ‘보장된’ 아래에서만 가능한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통제가 증가되면서 보이는 또 다른 현상으로 공적/사적, 은밀/공개 들의 사이과 간격이 커진다는 것이다. 사회 구조와 자아 구조의 지속적으 상응을 이러한 분열에 모습에서 볼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잘 이해 못했는데, 사회 구조에서 강요 요구량이 커지게 되고 통제가 증가해서 개인이 그것에 대응한게 이렇게 나타났다고 보면 되는 건가?)

문명화 과정 중에서 이렇게 사회적인 것들이 내면화 하기도 하지만, 개인의 권력이나 자유, 힘등은 사회로 넘어간다. 개인들은 그것에 의해서 통제된다. 이 사회라는 것에는 종교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종교가 하나의 문명화 도구로 쓰일 수 없다는 점에서 [만들어진 신]이 생각났다. 노베르트의 주장이 도킨스의 주장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그리고 과거 마녀 사냥이나 교회에서 행해진 잔인한 공격성과 강한 신앙심이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이 결국 그 사회에서 문명화된 정도, 잔악함이 아직 통제 되지 않았던 정도까지만 종교가 문명화 된다는 것에서 설명이 될 수 있었다.

노베르트는 개인의 쾌락도 사회로 넘어갔음을 말하면서 사회가 스포츠류를 이용해 대리만족을 하게 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그럼 왜 같은 폭력인데, 폭력 영화는 규제할까라는 물음을 가졌었는데, 결국 우리도 문명화 과정이기 떄문에 어떤건 규제하고 어떤건 규제하지 않는 ‘과정’으로써의 모습이라고 이해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여기까지 1권이었고 전체적인 문명화의 전체적인 과정을 봤다. 전체적 맥락을 설명하는 부분이여서 현대도 결국은 문명화 과정중이기에 비교할게 있어서 그 부분에서는 재미있었다. 책을 읽을수록 모순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것들 중 많은 것이 그 사이의 연결과리가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2권에서는 전체적인 문명화 과정이기 보다 봉건제, 군주제, 국가가 생기는 과정을 보면서 문명화 되는 배결을 보여준다. 1권의 내용이 약간은 우연적으로 뵤였지만, 조금 구체적인 2권이 내용은 모든 변화가 필연적으로 느껴진다.

조그많게 모여살던 사람들은 인구가 많아 지면서 (이부분도 좀 궁금하다. 왜 많아졌을까? 농업의 변화라도 일어났나? 아님 단순히 인구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를 이야기 하나?)더 많은 땅을 필요로 하게 되고 주변의 짱을 소유하게 된다. 민족이동이 일어나며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땅은 한정되어 있고. 결국 다른 민족, 국가와 부딫히게 된다 그래도 더 많은 땅을 필요로 하기 떄문에 침략 전쟁이 시작된다. 남의 땅을 빼앗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다른 민족, 국가에 비해 땅이 적어져 결국으 패배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에 침략의 분위기가 확산된다. 이부분에서 중국이 생각났다. 중국에도 수많은 침략전쟁이 있었는데, 특히 춘추전국시대에 유교를 받아들이고 가만히 백성을 편하게 하면 그들이 모여든다는 그 이론대로 실천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을 읽고 멍청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침략전쟁의 결과로 상류층은 자신소유의 땅이 생겼다. 그런데, 그 상류층의 인구 또한 더욱더 증가하고 새로운 영토의 필요는 더욱더 증가했다. 하류층은 한정된 땅에서 사람수가 증가 했는데, 그들은 노동의 분화가 시작되는 방향으로 상황에 적을 했다. 결국 상류층은 더많은 더많은 땅을 가지게 되서 독정 형태가 나타났다. 여기에서의 설명을 한번 적자면, 독점은 상위의 사회적 당위내에서 상화간의 의존성으로 인해 좀더큰 단위를 구성하는 다수의 소규모 뒤위들이 엇비슷한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고 그로인해 상호 자유롭게 가존의 독점에 방해 받지 않고 경쟁할 경우 그 중 몇몇 소수만이 승리하고 다른이들은 패배하고 그결과 점점더 적은 수 가 서서히 더많은 기회를 통제하는 경우를 말한다. 더 많은 수가 각축전에서 떨어져 나와 소수에게 직접또는 간접적으로 종속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점이 증가하고 지위가 포괄적이 되고 분업이 더 발달하며 중안과리인도 덜 자유롭게 된다. (다수와 상호의존 관계속에 놓이게 되므로)

1권에거 이야기 했듯이 사람들은 서로에게 점점 종속되는데 그것이 독점속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과정이 단순한 인간결합체에서 통제되는 방향이며, 열린 기회에서 닫힌 기회로 나아가는 방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한번만 일어난 것은 아니며 한번만에 다음과정으로 넘어간 것도 아니다. 땅이 넓어질수록 그때는 관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원심현상이 일어나 왕밑의 관료들이 더 많은 땅을 가지고 다시 분열하고 또 힘센누군가가 통일 시키고를 여러번 반복했다. 그러다가 독점안에서 엇비슷한 힘을 가진 세력이 평형을 이루에 되기도 한다. 그런경우 중앙으로부터 비자유 경쟁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결국 그들에게 야간의 성공을 보장한다. 왕에게 의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귀족들은 독점자들의 권력이 늘어나면서 스스로 폭력통제를 자제 한다. (1권에서의 자기 통제가 나타나는 또다른 배경이다.) 스스로 종속되고 감적억제를 한다. 그리고 특권의식, 자금심들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쾌락이 생긴다. 문명화가 진행된 것이다.

독점해야 할 것에 대한 투쟁이 점점 통제권으로 제한되고, 직점 전쟁을 하지 않는 독점에 분배에 대한 투쟁으로 바뀐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권력은 중앙으로 몰린다. 또한 기능분화가 늘어나면서 너무많은 갈들이 만들어 졌고 중재자, 통제자 역할이 커졌다. 통제자 아래 비슷한 세력들이 증가하고 이기거나 파명이 불가능해지고 협조한느 것 역시 상대방에게 이익이 되기에 내쪽은 불리해지는 결과가 커지므로 중재자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또 증가한다. 결론은 이 결과 왕의 권력이 증가한다. 왕권의 증가, 절대 왕정은 이러한 배경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시민계급의 성장을 들수 있다 귀족계급내에서만의 갈등이 아니라 귀족과 시민 계급 사이의 강들 또한 커지고 아까와 마친가지로 중재자의 권한이 커진다. 중재자 역시 권력의 확보를 위해 균령있게 양쪽에 힘을 실는다. 또한 돈이 생기고 통제가 원활해지고 경제적 힘이 군주에게 집중되어 절대 왕정은 힘을 얻는다.

‘인간의 상호 의존성이 개인들의 의지와 이성보다 더 강한, 더 강제적인 질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 변동이다.’

더이상 어떤 집단도 단순하게 생동한 수 없었다. 필연적인 관계망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같은 계층 사람들이나 다른 계층 사람들이나 그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그런것들이 불안과 금지로 나타난다. 이 불안은 가진걸 잃을 것에대한 불안이 기본이 되었고 잃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자기 통제, 자기 규제가 들어갔다. 이것이 아마 상류층에서 더 많은 문명화과정이 일어난 이유일 것이다. 시민계급보다 가진게 많았기에 잃을 것도 많았던 것이다.

지금의 사회에서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이러한 독점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을 본다.
마지막에 엘리아스가 모든 투쟁이 끝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신기했다 전체적으로 문명화는 끊임없는 변화과정이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 설명을 해 주셨지만 좀더 스스로 생각을 해 봐야 할 듯 하다.

책 2권에서, 한사람이 한 질문 ‘문명화는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에 대해 답한 글을 읽으면서 하나의 역사책을 보는 듯 했다. 변화 과정속 어쩔수 없는 그 연결 고리들은 우리들이 과거를 볼때 뭔가 갑자스럽게 생겨났다는 환상을 깨게 만든다. 마치 진화를 보는 것 같았다. 둘다 단순하게 보면 하나의 돌연변이가 갑자기 생겨나 그것이 진화인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좀더 알게되면 아주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변화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중엔 이 사회가 하나의 생물체 같다는 생각을 했다.(어디에서 들어본 말이기도 한 것 같다.)
인간은 변화하는 것 유기적인 것에 익숫하지만 동시에 너무 익숙해서 잘 인식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평소의 가지고 있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예상치 못하게 여기서 많이 찾아서 그것이 재미있었다.

추가 질문, 문명화는 통제가 계속 증가하는 방향으로 생긴다고 했는데, 과연 통제라는건 무한히 가능한건가? 무한히 가능하다면 결국 우리는 어떤 사회를 살아가게 될까? 무한한 통제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까지만 통제가 되는 쪽으로 간다면 그것 어디까지일까?

곪아 썩어가는 것들을 두 눈에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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