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다고지

지금 고민해 봐야 하는 것

 종종 지금 하는 이 공부가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 막연하지만 좋지 않은 의문이 들면서 이것을 모두 떨쳐버리고 싶어진다. 이 제도를 뛰쳐나가 봐야지 한 순간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20여년 가까이를 책상 앞에 앉는 것만이 내가 노력해야 할 것이었다. 다른 것을 할 만한 기회가 없었다는 것은 혼자만의 변명이라 생각하고, 이 제도 내에서 그래도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일상으로 돌아오고 만다. 이 기분 나쁜 과정을 몇 번씩 거치며 입시의 문 앞에 서있다. 수능, 내신, 논술 모든 것을 대학에 쏟아 부어 죽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이 시기에 나는 또다시 공부에 의문의 가져본다.

파울루 프레이리는 ‘우리 모두 인간이 되자’라 외치고 있는 듯하다. 피억압과 억압, 우리는 이 단어들에 손사래를 치며 좋지 못하다고 여긴다. 그와 동시에 이 단어들이 녹아들어 있는 사회 중심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스스로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한다거나, 억압당하며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힘들다. 글쓴이는 그것이 우리가 억압되어 지배되고 조작된 결과이며 진정한 인간화를 이루지 못한 모습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억압되고 억압하는 모두가 그러한 사회를 벗어나자고 계속적으로 말한다.
그 방법으로써 파울루 프레이리는 ‘억압자의 교육학을 들고 나온다. 교육의 주체를 피억압자로 논 것은 피 억압자만이 진정한 해방을 위한 투쟁을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무언가 모순된 상황 속에서 피해를 받는 자만이 그것에 더 잘 불평할 수 있고 그것을 더 잘 변화 시킬 수 있음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피 억압자의 교육학의 제일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이 피 억압자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착취당해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억압적 현식이 인간 스스로의 존재의식을 형성하는 것을 막고 길들이게 하며 억압자에 대한 신화와 환상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파울리의 말들이 상당히 추상적이어서 조금 애매했지만 우리사회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그 밑의 노동자들, 학교와 학생 등의 많은 관계들이 눈에 띄었다. 그렇기에 그가 하는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외침이라는 느낌이 든 까닭이다.
이러한 것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이 대화에 기반을 둔 교육이며 그것은 ‘학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게 돕는 것, 모든 교육의 기본이며 진정한 의미가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피억압자임을 알게 하는 방법으로는 ‘단신은 피 억압자니 이러이러 해야 하고, 이러이러한 것을 당해왔습니다.’라 끊임없이 알려 줄 수 있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고 그것을 변화 하려 한다는 것이 다른 동물과의 차이를 만들어 내고 인간화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방법은 이것을 못하게 한다. 오직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대화를 통한 교육만이 진정한 인간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교육에는 교육자들, 즉 변화하려고 하는 조직의 지도자가 존재한다. 이때 이 지도자는 엘리트와 다르다. 자신의 생각대로 대중을 움직기기보다는 대중의 욕구를 위해 교육하고 대화한다.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특히 그 지도자 행동이 선의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이 대중의 요구가아니라면 인간화 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이 부분에서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나병환자들의 섬에 새로 온 원장이 있었고, 그는 내가 보기에는 나병 환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보여 졌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좋지만은 많은 결과를 냈고, 그들에게서 원장은 당신은 우리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지 않는 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곤 떠나갔다 지도자가 아닌 신분으로 돌아와 섬의 일원이 되려 하고, 그 섬을 위해 다시 노력해보려 한다. 이 내용을 읽고 지도자는 이것도 저것도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인가? 어떻게 아무것도 안하는 지도자가 있을 수 있지? 그럼 지도자는 대체 어때야하는 거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고민 했었다. 이 책에서 진짜 지도자는 대중이 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그것이 옳더라도 대중이 원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한다. 지도자는 단지 대중이 생각하도록 도와주면서 말이다.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왠지 알 것 같았다. 리더란 대중위에 있지 않고 함께 있는 것이라는 파울루 프레이리의 말을 생각하면.
이 책에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들이 있다. 우선 글쓴이가 억압자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억압자가 피억압자를 도와주는 것은 위선이며, 죄의식일 뿐 인간화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했을 때 극단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진정한 마음으로 돕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그것마저 뭐라고 하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반대화적 문화의 특징에서 조작이나 지배 등이 의도적으로 억압하기 위한 것임을 말한 것 같아서 정말 그런 걸까? 란 의문을 남겼다. 게다가 피억압자가 개혁하는 과정에서 억압자와 대화하려 하지 말며, 투쟁이 폭력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좀 불편했다. 정말 그래야 하는 걸까? 사실, 나의 억압자들의 이해한다는 식의 이러한 생각들이 억압자를 내면화 한 결과일까? 라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신성화된 억압자들을 동경하고 있지 않나, 나에게도 자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오싹했다.
이 페다고지라는 책에서 추상적인 것들을 나의 사회인 한교에 끌어드렸을 때도 무서워진다. 억압자인 학교, 피억압자인 학생, 그 속에서 학교 교육은 글쓴이가 말하는 비인간적 억압적 방법으로 이루어 져 있다. 이 학교에서 난 억압에 훈련되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학교교육은 인간화도 할 수 없을 뿐더러 우리가 목매다는 인재도 만들지 못한다고 입시공화국의 종말에서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페다고지의 내용을 눈앞으로 가져와 우리교육의 모순을 하나하나 꼬집어 내었다. 그러한 이 책을 읽고 한동안 공부하기 싫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조금 아이러니 하지만 내가 공부를 더 하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그것이 클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교육이 더 높은 공부를 하고 더 다양한 생각을 하는 공부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또한 대학의 모습도, 내가 더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일까? 라는 의문 속에서 거기에 서도 생각을 막으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제 정말 수능이라는 것이, 입시라는 것이 코앞이다. 동시에 사회로 한걸음 나아갈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 번도 자신을 찾아보며, 돌아보지 못하고 사회인이라는 제품이 되어 사회에 나가기 전 많은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교육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부질없는 고생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 냄새나는 삶을 살아보는 것이 더 즐겁고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싫은 교육’을 단순히 잊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최소한 그 사람들도 지금의 자신이 격은 교육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진 않을 것 같다. 나도 내 자식에게 이런 걸 물려주기 싫다. 입시의 글자를 위한 교육대신 내 자식을 위한 교육이라는 것을 받게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 교육을 고민해 본다. 모순되고 잘못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건 그 상황속의 ‘사람’이며 그 사람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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