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사유의 전통 1

논어가 유교 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를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0C 경 중국 문명이 완성된고 -7~-3C 경 춘추 전국 시대로 중국 문명이 와해 되고, 재편성 되는 시기를 거쳐, -1C 경 한나라가 그 문화들을 중합하고 재 결집했다. 이것이 한 문명이라 부르는 이유고, 서양의 로마와 비슷한 위치에 둘 수 있다. 한나라는 문화를 중합하과정에서 사서 삼경의 해석을 이용했고, 한 문화라 부르는 것이 왜 고전으로 사서 삼경을 두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한나라 때 재 정립하기 이전, 춘추전국 시대 예언자적 목소리를 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공자였고, 그 말씀들을 정리한 것이 논어이다. 이후에 성인으로 받아들여 지는 공자라는 인물은, 혼란한 시기에 고대 문명을 공부하며 교육 시키므로 인해, 고대 문명 회복 역할을 공자가 했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전통적 교육 시스템은  명신보감 따위의 글자 공부를 시작하여, 소학을 익히고, 대학 중용을 익힌 다음 논어를 읽는 순서로 이루어졌었다. 그 이외의 사서 삼경은 논어 익히면서 같이 익히는 고전이었다.

미국은 인권 개념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고, 하늘이라 하면 절대적 유일신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독교 문화를 기반으로 한 인권의 개념이다.

반면의 중국의 인권 개념은 조금 다른데, 기독교가 아니라 유교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역사서로 그 존재가 증명된 -12세기 주나라는 주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고, 봉토를 나누어주어 제후국이 존재했다. 권위와 상징적으로 지배 했다. -770경 주황실이 존재는 하나 힘이 약해졌고, 북방 민족이 내려오면서 밀려났다. 천도했다. 주변에 더 큰 힘을 가진 제후국이 많아 졌다. 이때가 춘추 전국 시대이다. -403큰 나라였던 조나라가 세 나라, 한 위, 진으로 쪼개지면서 전국 시대가 열린다. -221진시왕에 의해 통일 된다.

그 이후 한나라가 집권할 당시 서앙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으로 중국을 지배했으며, 로마 제국보다 더 큰 판도를 가졌었다.

 –여기까지 공부하고 시험봄 ㅠㅠ —

제국이라하면 통합된 힘을 가지기 위해 여러가지 정비를 한다. 화페를 통일 하여 돈을 정비함으로써 경제를 통합하고, 길, 마차 따위를 통합하고, 정치, 사상도 통일한다. 사상을 통일 함에 있어서는 각 지역에서 사상가, 사상을 정리하여 모았고, 분류했다. 크게 4그룹으로 나눠 정리 되었으며, 도가 묵가 유가 법가가 그것이다.

중국문화는 겉으로는 유가고 내부는 법가라는 말이 있을 적으로 나라의 지식인들이 많이 따르고 국가 시스템은 유가적으로 정리되었지만, 법치주의와 연계되어 행정적인 것들은 법가적으로 정리 되었다.

한대 막기에 불교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법가는 유가 안으로 들어가고 유교, 도교가 제자 백가를 흡수하거나, 그 두 사상을 기반으로 다른 사상들이 분류된다.

국가 제사 체계는 유교이고, 사상체제는 유교, 도가, 불교 세 종교가 공존하며 존재했다.

고대 제사람 현실 위에 어떤 것이 었고, 그것과 연결하는 시도로써 받아들여 졌다. 제사는 아무나 행할 수 없으며, 제사를 짓는 권한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부여 되었고, 그 제사권한과 사회적 위치는 연계되어 있었다. 천자는 온신에게 제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으며, 제후는 자신이 사는 지역신에게만, 관리는 자기가 관리하는 지역의 지역신에게 제사할 권리를 가졌었다. 그리고 개개인의 집안은 자기 조상, 자기 집에 거주하는 신들에게만 제사 지낼 권리를 가졌었다. 관리가 지역으로 파견되어 나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국비로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 누군지 파악하는 것이었으며, 그 다음이 세금관련한 것, 그리고 나서 행정과 법 집행에 관련된 사항을 보았다.

남에 집의 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경우 ‘음사’라 해서 옳지 않게 여겼으며 여기서 서양 종교와의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난다. 기독교에서는 개인이 자기의 조상이나 집에 관련된 신이 아닌 다른 신에게 기도 하기 때문에, 중국에 입장에서는 이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불교와 도교도 위에서 이야기한 유교 틀 안에서 제사를 지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시절 이 두 종교는 통제 가능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일정 수준안에서 제사를 허락했다.

조상,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조상신이 거주하는 인간의 삶을 넘어서는 질서가 있다는 인식이 기반이 되어 있다.

인간이 비례(非禮)하는 행동을 하면 하늘이 노여워 할 것이라 여겼으며, 그 예를 갖춘것이 유학자였고, 그래서 왕의 자문역할은 유학자가 했던 것이다.

유교는 다른 종교와 비교 했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종교와 달라 보인다. 언뜻 보면 유교는 종교라 말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것은 dogma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의 도그마로는 3위 일체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신인 동시에 완벽한 인간이고, 예수는 죽음으로써 인간을 구원했다라는 명제로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유교에 대해 그 핵심이 무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사실 불교와 힌두교도 도그마가 없다. 이슬람은 알라 이외에는 신은 없다, 10계명의 도그마를 가지고 있다.

송대 정도까지 가면 삼교 합일

불교, 부모은중경// 부모의 은혜를 공경하는 경전이 생긴다.

도교 ‘충효도’라는 그룹이 존재했음

15~17C 중국에서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 졌는데, 사회즈의가 없어졌기에 중국은 뭔가를 찾아내야 했다. 그것이 유교이다.

효제위인지본

사단칠정논쟁

2장 유학에서 학문은 인을 가지기 위한 과정

3장 교언령색 내면적 진실성이 떨어진다.

향원은 덕의 적이다?했다.

4장에서 공자는 증자를 아둔하지만 성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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