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화벨이 갑자기 울렸다. 그리고 아빠가 말을 시작했다. 집안 곳곳이 울렸다. 잘 들리지 않는 건가? 요즘 느끼지만 통화 목소리는 우렁차다. 고함을 지르듯 통화를 한다. 순간 받는 사람이 아빠가 화내고 있는 걸로 착각하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정확하게 통화를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방구석에서 드러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었고, 그 조그마한 창안에 난 빠져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머리’, ‘다쳤다’라는 어구가 귀에 탁 박혔다. 순식간에 내 정신은 스마트폰 작은 화면에서 빠져나왔다. 정신이 거실에 쏠린티를 내기 싫었던 내 몸은, 최소한의 미동만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가 ‘다쳤다’라는 것에 ‘흥미’를 갖는 내 자신이 맘에 들지 않았다. 안타까움, 동정 이런것에 기반한 ‘흥미’가 아니라, 얼굴에 살짝 미소가 지어지는 ‘흥미’를 보이지 않으려고 방에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가?

– 어렸을 때 부터 그랬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게 일반적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좋지 못한 소리를 들었을때 ‘웃겨서’ 입꼬리가 올라간다는 것. 이것을 감추기 위해 나는 눈썹을 찡그리는 연습을 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미소의 과정이 아니게끔 상대방이 믿도록. 다른이의 안 좋은 소식을 들으면 내 뇌는 농담으로 처리를 해 버리는 듯 하다. 콧바람과 함께 웃음이 나와버린다. 그리고 재빠르게 미간을 좁힌다. 내 감정표현방법.

엄마는 집에 있다. 나도 집에 있다. 아빠가 전화를 받는다. 외할아버지가 얼마전에 치매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 들어가셨다. 외할아버지가 일이나셨나? ‘##이?’ 라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생이름이다. 엄마도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자전거 타지 말라니까.’ 알수 없는 소리를 하신다. 우리집은 자전거가 없다. 동생이 종종 자전거 이야기를 하긴 했다. 어떻게 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전거가 있고 바퀴가 망가져 요즘은 타고 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이틀전쯤 했던거 같다. 그런데 엄마는 왜 자전거 이야기인가? ‘자전거 타다 그랬대?’ 또 자전거가 원인이냐고 묻는 엄마. 아빠는 여전히 통화중이시다. ‘누가 머리가 다쳤다는 겁니까?’ 아빠는 누구랑 통화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분명 동생이름이 나온것 같은데, 다시 묻는다. ‘축구하다가요?’ ‘그런데 말하시는 분은 누구신가요?’ ‘아 그래요?’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온다. ‘나한테도 전화가 왔었네’ 어느새 아빠 가까이 앉은 나는, 직접 통화를 하지 않음에도 전화기 넘어로 전화건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목소리였다. ‘했던말을 또 하고, 같은 질문을 또 해요.’ 사정을 종합해 보니, 오늘 동생과 함께 축구를 같이한 학교 친구들이 축구중 머리를 세게 부딛힌 ##를 걱정하여 연락을 준듯 했다. ##이 머리를 부딛혀 충격으로 축구장에 쓰러졌나? 그래서 ##핸드폰을 통해 우리부모님에게 연락을 한건가? ‘##는 어디있는데?’ 아빠가 물었다. ‘집에 간다고 갔어요.’
‘음.. 그럼 내가 전화 해 볼게’ ‘그럼, 저희가 전화 끊을테니까 전화 해 보세요.’ 이러저러 대화과 오고간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동생에게 전화. 어지간한 상처로 아픈 소리를 내는 것을 약하다고 생각하고, 그런것을 걱정하는 것 또한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아빠다. 부산스러워지고, 말이 많아진 엄마와는 달리, 새 스마트 폰에 적응 해 가며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통화중이오니…’ 아직 ##친구들이 전화를 끊지 않은 모양이다. 두어번 녹음된 소리를 듣고나니, ##와 통화가 연결되었다. ‘너 어딘데?’ ‘길음역?’ ‘일요일이지 이 새끼야’ ‘먼소리야?’ 평소와 같은 부자의 대화. 끊고 나서는 평소와 같지 않았다. ‘근데, 이새끼가 나한테 오늘 무슨 요일이냐고 물어보네, 그리고 지 학교 오늘 왜 갔냐고 나한테 물어봐’ 약간 짜증내는 듯한 크고 낮은 목소리. ‘고대병원을 데리고 가야겠네’ 걱정의 감정의 또 다시 우렁찬 목소리에 묻혔다. 아빠는 엄마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길음역이었으면 다 왔겠네’ 나도 한마디 했다. 걱정하는 흐름에 따라서.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핸드폰을 잡았다. 보던거 봐야지. 엄마는 부재중 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전화한게 누구에요? 저 ## 엄만데,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면 도움이 될거 같아서… 좀 이야기 해 줄수 있어요?’ 그리고 엄마 아빠는 집을 나섰다.

‘다녀오세요.’ 그리고 인터넷서핑 만화보기, 평소와 같이 영혼없이 시간을 보냈다. 1시간쯤 그러고 있었을까. 집 전화벨이 울렸다. 시끄럽다. 엄마 목소리. 아마 늦을거 같다고. 이시간에 들어오지 않고 전화를 했으니,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 ##가 계속 똑같은 것만 물어, 기억이 안난대, 기억을 못해, 오늘 머했는지. 오늘 무슨요일이냐고 묻고, 오늘 왜 자기가 학교 갔냐고 물어, 모른다고 하면 막 짜증내.’ 흠.. 원래 집에서 하던것 같이 하는거 같은데 좀더 심각한가? 기억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혼자 치부해 버리고, ## 오늘 학교 왜 갔는데요? ##랑 같은 질문을 엄마에게 던진다. ‘ 축구하러 갔겠지’ ‘아침 일찍부터 나갔는데? 축구만 하러 갔으면 뭐하러 그렇게 일찍가?’ ‘일요일인데 수업도 없는데 그럼 머하러가?’ ‘그니까 왜 일찍 갔는지 몰라요?’ ‘오늘 아침에 자전거 고치러 간다고 그랬어’ ‘자전거 고칠 돈 없다고 그랬는데?’ ‘오늘 오만원 줬어’ ‘아….. 그래서 아까 자전거 탓을 했던 거구나’ ‘오늘 왜 학교 갔냐고 묻는건 먼가 잊어버리지 말아야 될게 있어서 그런거 아닐까요? 왜 학교 갔는지 학교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안돼? 아까 연락온 애들한테’ ‘축구하러 갔겠지’
‘왜 안물어보고?’ 이런 쓸데 없는 대화가 왔다갔다 한 후, 순간 깨달았다. 이 내용을 하나도 중요한게 아니야. 엄마도 깨달은 듯 했다. ‘집에는 별일 없지?’ 별일이 있을리가. 나 혼자 그냥 컴퓨터 하고 있는데. ‘별일 있을까봐 전화했어, 우리 늦게 들어갈거 같으니까, 별일 있느면 전화하고’ ‘네’ 전화를 끊었다. 아 정말 나는 왜 걱정이 안될까? 한 20여분뒤 전화가 한번 더 울렸다. 이번엔 아빠였다. ‘얘가 약간 상태가 안좋아서 좀더 있어야 될거 같아.’ ‘검사 결과 나왔어요?’ ‘응 찍어 봤는데 내출혈은 없대. 근데 오늘 일을 기억 못해, 경과를 지켜봐야 할거 같다고 그래서 있다 가야할거 같아.’ ‘네.. 그럼 나중에 봐요’

그렇게 오늘은 끝났다. 나쁜 상상을 하게 된다. 생각보다 큰 문제여서, 영구적인 뇌 손상이 오게 되고. 우리 가족중 큰돈 들어갈 만큼 아팠던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나를 우리 스스로의 축복이며 자랑으로 여겼는데 그게 끝날 수 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되면 나도 호주 다시 갈 수 없겠지. 학교로 빨리 돌아가서 빨리 돈을 벌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겠지. 근데 정말 열심히 살 수 있을까. 이렇게 게으른 인간인데? 이런 망상을 하고 나니, 현실로 돌아왔다. 세상은 상상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항상 그랬으니, 이렇게 상상을 했으니, 아마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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